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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아들 둔 박정희 교장의 희망 메시지
자전에세이 '푸른집 이야기' 출간… 정년퇴임 앞두고 15일 출판기념회
"지금은 내가 석이를 돌보지만 언젠가는 돌보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석이는 어떤 시설에 들어가야 하는데 자기 이름이나 나이를 말할 줄 모르고 엄마 이름도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도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찍어준 사진들로 앨범을 만들어 남겨주려고 해도 앨범을 간직할 줄 모르고 몇 장 넘기다가 찢어 버린다."
대전 변동중학교 박정희 교장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지적장애 1급인 아들 석이 때문이다.
아들을 돌보지 못하게 되면 시설에 들어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갈 아들의 미래. 그런 아들을 위해 박 교장은 20년 전부터 아들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카페도 만들어 석이에 대한 글과 사진을 올려놓았다.
8월 말 정년퇴임하는 박 교장은 이 글들을 모아 <푸른집 이야기>라는 자전에세이를 만들었다. 이 책은 서른 두 살 된 아들을 위한 기록이자 박 교장 자신의 60여년 인생 역정이기도 하다.
▲8월 말 정년퇴임하는 박정희 교장은 자전에세이 '푸른집 이야기'를 출간했다.
32살 아들 기록이자 60여년 자신의 인생 역정 책으로 엮어
대전 출신의 박 교장은 대전여고, 연세대 신학과와 연합신학대학원 기독교교육학과(석사)를 졸업했다. 경북에서 교사를 시작해 가오중, 충남여중, 혜광학교, 어은중, 남선중, 대덕중을 거쳐 변동중에서 정년을 맞는다.
35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학문의 끈을 놓지 않아 침례신학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석사)에서 장애아 부모의 양육스트레스에 대한 연구를 했고 목원대 산업정보언론대학원 도자디자인학과(석사)에서 도예 공부도 했다.
여러 차례 단체전과 두 차례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도예가로도 이름을 얻고 있는 박 교장은 2005년 대전교원미술전에서도 1등급 입상했다.
장애아들을 키우며 공부와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쉽지 않은데 박 교장은 "아들 때문에 공부를 했고 도예도 시작한 것"이라면서 "오늘의 내가 교직을 잘 마칠 수 있는 것도 석이 덕분"이라며 오히려 아들에게 고마워했다.
장애아를 둔 부모의 대부분은 아이 이야기를 드러내기 꺼리는데 박 교장은 스스럼없이 먼저 아들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석이를 처음 진단한 재활병원 의사로부터 특수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특수교육 공부를 시작했다"며 "공부를 하면서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게 됐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박정희 교장 아들 위해 특수교육 공부하고 도예 배워
▲박정희 교장의 자전에세이 '푸른집 이야기'
특수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박 교장은 도덕교사에서 특수교사로 교과를 변경해 본격적으로 장애 학생들을 지도했다. 장애학생들을 가르치며 아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도예를 배운 것도 아들 때문이며 아들과 함께 흙을 주무르며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박 교장은 "일하며 아이를 돌보는 힘겨운 일상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갔는데 도예를 배우며 조급증이 해소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다행히 아들도 흙 만지는 것을 좋아해 흙을 떼어 포도 알처럼 둥글게 뭉쳐 놓은 것을 연결해 화분을 만들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는 아예 학교 안에 도예실을 만들어 학부모에게 도자기를 가르치는데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얼굴을 보면 웃음이 사라지고 그늘이 있는데 내 얼굴도 저렇지 않았나 생각하니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줘야할 것 같더라"며 "부모, 특히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밝고 건강해야 장애아도 잘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장 퇴임 후 ‘청토헌’에서 장애아와 가족 위한 도예교실 운영
박 교장은 다음 달로 정년퇴임하지만 장애아와 가족을 위한 도예교실은 계속한다. 그는 대전월드컵경기장 근처 자신의 집에 '청토헌'이라는 교육장을 꾸며 놓고 3년 전부터 장애아와 가족들에게 도자기를 가르치고 있다.
박 교장은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석이를 낳고 키워 온 힘겨운 시간들을 나와 비슷한 형편에 있는 엄마들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내놓기 쉽지 않은 글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며 "오늘도 너무 힘들어 그냥 주저앉아 넋 놓아 울고 싶은 장애 자녀를 돌보는 모든 어머니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박 교장의 후배와 제자들은 그의 정년퇴임을 겸한 <푸른집 이야기> 출판기념회를 15일 오후 5시 30분 경하온천호텔에서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