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작품
[스크랩] 우리에게 분청사기가 있어 자랑스럽다
푸른집이야기
2014. 5. 19. 10:01
청자도 아닌 것이 백자도 아닌 것이 어찌 보면 조잡하고, 어찌 보면 멋있는 우리나라 자기가 있다. 바로 분청사기다. 서울 어느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분청사기 항아리를 보자. 자기 몸체의 색은 별로다. 그래서 흰색 분을 귀얄(풀칠이나 옻칠하는 데 쓰는 솔)로 쓱쓱 발랐다. 그 위에 검은 색을 내는 산화철 안료로 역시 쓱싹 단번에 무늬를 그려 넣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보자. 조선 전기에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현대 감각이 묻어난다. 항아리 모양과 아래 부분 하다 만 듯한 칠과 문양이 기묘하게 어울리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뭐 저런 아무렇게나 만든 자기가 있나 하지만, 보면 볼수록 분청사기 세상에 빠져든다.
중앙에 연꽃을 새겨 넣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우연히 새겨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이름을 붙여보자. 한자말을 그대로 쓰면 '분청사기상감연화문편병', 풀어서 쓰면 '분청사기 상감 연꽃 무늬 납작병'쯤 되겠다. 이런 분청사기를 상감분청이라고 한다. 상감법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공정을 거친다. 똑같은 무늬를 반복해서 넣을 경우가 생겼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맞아, 그거야" 연꽃이나 국화꽃 같은 무늬를 도장으로 만든다. 그것을 그릇 표면에 찍는다. 자국 난 곳을 칼로 파내고 흰색 흙으로 분장하여 굽는다. 도장을 사용하여 상감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이런 분청사기를 인화분청이라고 한다.
소박하다 못해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욕심 같은 것은 아예 버린 듯한 분위기다. 만들려고 애쓰고 노력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들어져 버린 듯한 기물들이다. 분청사기는 백토분으로 치장한 청자를 말한다. 고려 귀족들은 고상한 청자를 통해서 극락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청자를 갖지 못해 극락을 갈 수 없다고 생각한 민중들을 땅도 주지 않고 부려먹었다. 고려 말에 권문세족들이 원나라를 등에 업고 국가의 재산을 다 차지했다. 모순은 누적되었고, 불만은 극에 달했다. 자주성을 회복하고 부패한 집권 권문세족을 개혁하려는 세력이 점차 나타났다. 향촌에서 인기를 얻던 중소지주층 사대부들이 그들이었다. 사대부와 무인들이 결탁하여 고려왕조 권문세족을 물리쳤다. 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 분청사기를 그냥 백자라 불렀다. 분청사기와 함께 조선전기부터 백자를 제작했다.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취향과 어울리는 흰색을 선호했나보다. 분청사기도 점차 백색을 더 많이 띠어갔다. 청자에 아예 흰색을 귀얄로 전체에 바르고 일부를 선이나 면으로 깎아내어 무늬로 삼았다. 깎아낸 분청을 박지분청이라 한다. 이 중에서 주로 선으로 무늬를 표현한 것을 조화분청이라고 한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모양에 천진난만 혹은 장난기가 덕지덕지 묻어나온다. 좁은 측면은 모란 연꽃 따위로 무늬를 새겼다. 중앙 넓은 곳에는 붕어인 듯한 물고기 두 마리를 아래 위로 새겨 넣었다.
만들려고 작정하고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다. 어쩌다 만들어져 버린 것 같다. 사대부들이 이런 무의자연을 은근히 좋아했나 보다. 도공들 역시 정교하고 화려하고 예쁘게 잘 만든다고 해서 좋은 대접을 받은 것이 아니었나 보다. 조선전기 수공업은 관영체제였다. 도공들은 공장 안에 이름이 올라 국가에 봄 여름 가을 중 한 철을 징역 당했다. 도공들이 자기를 잘 만든다고 해서 빨리 집에 보내주는 것도 아니었다. 대접이 크게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작업 할당량을 일정 기간 동안 아무 생각없이 해내야 했다.
"에이, 연꽃을 많이 하니 지루하구만, 이제부터는 국화다." 어떤 때는 막걸리도 한 잔 했나보다. 파초를 새기고 학을 새긴다. 술 취한 모습이 파초에 나타나고, 학은 무슨 공룡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조잡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가? 흙장난하다 꾸중 들으면서 자랐다. 점차 물레를 돌리고 가마에 불넣기를 익히고 무늬 새겨 넣은 법을 익혔다. 성장과정 자체가 바로 도공의 길이었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징역 당했다. 자신 앞에 놓인 일감을 거침없이 치러낸다. 잘 만든다고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집에 빨리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도예의 경지는 무르익었다. 자기장의 자존심과 예술 정신은 그럼에도 살아 있었다. 손에 익을 대로 익은 솜씨다.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분청자와 무늬들은 수 백 년을 이어온 도예의 결정체가 되어갔다. '도자기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최고 경지에 이른 도예를 조선전기 도공들을 통해서 모두 다 표현하고 말았다. 우리가 할 일은 그 경지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 말은 영국의 어느 도예가가 한 말이란다.
만들려고 애써서 나타날 수 없는 경지가 또 하나 탄생했다. 욕심이 있을 수 없는 당대 최고의 도공이 자신도 모르게 만들고 만 기물이 되고 말았다. 현대 감각이 막 살아 있다.
분청사기는 상감분청에서 시작하여 점차 흰색의 면적을 넓히더니 마침내 몸 전체를 흰색으로 발라버렸다. 그리고 백자에게 자리를 넘기고 사라지고 말았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로 백자가 완전히 분청사기를 압도하고 말았다. 분청사기는 그래서 음악으로 치면 시나위 같다. 최고의 고수들이 모였다. 장구가 굿거리 장단을 친다. 서로 잘 아는 악사들이 아무 생각없이, 악보도 없이 연주한다. 가야금이 잘하는 부분이 나타났다. 다른 악기들은 숨을 죽인다. 가야금이 신나게 놀아 제친다. 뒤를 이어 대금이 줄창나게 앞서 나간다. 해금이 야금야금 도와주는 듯하다가 뒤를 잇는다. 장단은 조금씩 빨라진다. 어느새 삼채가 되었다. 삼채 분야에서는 피리가 맘껏 논다. 밑바닥을 훑어주고 있던 아쟁이 그 큰 폭으로 신나게 좌중을 압도한다. 모두 무아의 경지가 되었다. 자진모리에서는 다시 한번 모두 큰 소리로 협연을 해본다. 서로 잘 알기에 모두 아무도 모르게 조화를 이룬다. 점점 빨라지자 장구가 이젠 전체를 막 몰아간다. 절정에 달했나 보다. 장단은 빠른 장단이지만 곡조는 정리해나가고 있다. 대금과 아쟁이 한풀이하듯 절정을 맞는다. 끝났다. 누가 작곡해 본 적도 없는 한번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악사도 청중도 모두 꿈 속을 헤매다 겨우 깨어났다. 시나위가 자기로 남아 있는 것이 나는 분청사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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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 그리고 여행
글쓴이 : 처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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